나는 왜 철학을 사랑하는가

흔히 철학하면 어려운 것, 따분한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나도 한 때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내가 철학에 대해 처음 접하게 된 때는 고등학교 윤리시간이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시작으로 동서양의 많은 철학자들의 주장과 사상에 대해 배웠지만 그것들은 그저 암기의 대상이었을뿐 나에게 어떠한 감흥도 주지 못했다.

최근에 들어서야 진정한 철학은 유명한 철학자들의 주장과 그들만의 전문적인 용어에 대해서 암기하고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해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 즉 스스로 하는 활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프레드 웨스트팔은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철학 입문의 과정은 모든 문제를 완전히 풀어주거나, 단지 암기함으로써 획득할 수 있는 기성 해결책을 제공하는 곳이 아니다. 철학이란 분야는 기성 주택을 사들이는 것보다는 자신의 주택을 설계하고 건축하는 것에 더욱 가깝게 비유될 수 있다.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집을 원하는 사람은(시간과 적절한 재능이 있다면) 스스로 집을 지으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설계의 모든 측면들을 조심스럽게 비판적으로, 그리고 창조적인 관점에서 대안들을 찾아 보려고 할 것이고, 시간이 허용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작품을 검토하려고 할 것이다.

-Fred A. Westphal, <어떻게 철학을 할 것인가(The Activity Of Philosophy)>

그렇다면 무엇이 내가 철학을 사랑하도록 만든 것일까?

그래도 철학에 아예 관심이 없지 않았던 나에게 어느 날 한 친구가 소크라테스의 책(실제로 소크라테스가 쓴 책은 없지만)부터 시대순으로 쭉 읽어나가는 것도 서양철학을 공부하는 좋은 방법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화이트헤드가 서양철학은 플라톤에 대한 주석이라고 할 정도로 그리스 철학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니 괜찮은 생각인 것 같았다. 어딘가에 인용된 것만 보았던 플라톤의 대화편을 직접 원전으로 읽는다니 신기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처음으로 읽게 된 것은 <파이돈>이었다. 파이돈은 소크라테스 최후의 날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쓴 책인데 실제로 그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소크라테스의 대화를 따라가다보니 정말 사고의 깊이가 대단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단 한번도 어떤 것에 대해서 그 정도의 깊이로 논증을 해본적이 없었다. 논증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철학자들의 생각의 깊이가 이정도라면 다른 철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했었는지도 궁금했고 그렇게 철학자들의 생각을 따라가다보면 나도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철학자들의 원전을 조금씩 읽어가다 보니 인류가 그동안 이룩한 역사에 있어 현재 내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의 위치, 즉 시대적인 큰 흐름과 맥락에 대해 알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나의 선조들은 어떠한 생각들을 해왔고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것일까?'하는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었다. 이는 비단 철학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역사, 예술과 같은 다른 분야의 관심도 이끌어냈다. 괴테도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지난 3,000년을 설명할 수 없는 이는 하루하루를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채 살아가게 되리라.

-괴테

한편으로 철학은 세상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도 만든다.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쓴 <소피의 세계>에서 알베르토 크녹스 선생님은 소피에게 한 가지 사고실험에 대해 이야기 해 준다. 어느 날 부엌에서 아빠가 허공을 둥둥 떠다니게 된다면 그것을 본 2-3살짜리 아기는 그저 아빠가 난다고 생각하겠지만 엄마가 봤을 때는 들고 있던 잼 병을 놓치고 화들짝 놀랄 것이라고. 우리는 살면서 세상에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정확히 말해서 철학 문제는 모든 사람과 관련이 있지만, 모든 사람이 철학자가 될 수는 없어. 사람들 대부분이 일상생활에 쫓겨서 각기 다른 이유로 삶에 대한 경이감을 잃어버려. / 어린아이에겐 세계와 그 안의 모든 것이 놀랍도록 신기한 새로움으로 다가와. 그런데 어른들을 그렇지 않아. 대부분의 어른들은 이 세계를 완전히 평범한 것으로 체험하지. / 바로 이 점 때문에 철학자라는 훌륭한 예외가 생겨나는 거야. 철학자는 절대로 이 세상에 적응할 수 없어. 남자든 여자든 철학자에게 이 세계는 언제나 이해하기 어렵고 수수께끼 같은 신비한 세계인 거야. 철학자와 어린이는 이처럼 중요한 공통점이 있어. 철학자는 일생 동안 어린아이 같은 감수성을 유지한다고 볼 수 있지.

-요슈타인 가아더, <소피의 세계>

생각해보면 삶은 정말 경이롭다.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드넓은 우주를 생각하다보면 나는 그저 미약한 존재로만 느껴지기도 한다. '우주는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일까?', '삶과 죽음은 어떤 의미일까?' 같은 질문에 대해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도 계속해서 질문하지는 않는다. 삶에 대해 익숙해지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고달프기 때문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철학은 철학자에 대한 공부가 아니다. 철학은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질문에 대한 나의 생각을 남들에게 잘 전달하기 위한 논증의 과정이다. 나는 철학이 내 삶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결단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또한 삶의 대부분을 교사로서 살아갈 것이기 때문에 교육현장에 던져야 할 질문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고 경력이 쌓이면서 교직생활에 권태를 느끼는 것은 그것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며 삶에 대한, 교육에 대한 경외심을 잃었기 때문이다. 질문을 던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부분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 싶다.

끝으로 에피쿠로스가 남긴 글을 보며 철학에 대한 나의 생각을 되새김질 해본다.

젊은 사람이 철학하기를 주저해서는 안 되며, 늙었다고 해도 철학에 싫증을 내면 안 된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마음의 건강을 얻기에 너무 이르거나 늦지 않았기 때문이다. 철학할 나이가 아직 오지 않았거나 이미 지나갔다고 말하는 사람은 행복을 위한 나이가 자신에게 아직 오지 않았거나 이미 지나갔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따라서 젊은이건 늙은이건 철학을 탐구해야 한다.

-에피쿠로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