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 현대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나는 1980년대 생이다. 일제 강점기, 6.25 전쟁, 4.19, 5.16, 군부 독재, 민주화 운동 등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장식했던 큼직한 사건들 중 그 어떤 것도 나는 직접적으로 경험해보지 못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우리나라는 6.25 전쟁 직후에 비해 상당한 부를 쌓은 상태였다. 회충검사를 위해 채변봉투에 대변을 담아 학교에 제출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있기는 하지만 나는 삼시세끼 굶어본 적이 없고 상하수도 시설이 잘 갖춰진 작은 도시의 아파트에서 별다른 건강상의 문제없이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 시대에는 비록 국정 역사교과서로 공부했지만 나름 균형잡힌 시각에서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공부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현대사도 그렇다. 4.19는 혁명이고 5.16은 군사정변이라고 배웠다. 유신정권이나 군사독재, 6월 항쟁에 대해서도 배웠지만 우리나라의 눈부신 경제발전에 대해서도 배웠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우리나라가 참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여기까지 왔구나.'하고 머리로 생각할 수는 있게 되었지만 그래서 내가 지금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자유와 권리, 생존과 안전의 욕구를 뛰어넘어 자아실현의 욕구를 추구하는 삶 등이 수많은 사람들이 흘린 피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가슴으로 느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이것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내 또래 세대들에게도 일반적일 것이라 생각한다.

지난 2013년 개봉한 영화 '변호인'은 일명 '부림 사건', 즉 부산의 '학림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나는 당시 영화를 보고 나서야 부림 사건이나 학림 사건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국사 시간에 이 사건들에 대해서 배웠는지 솔직히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교과서에 나와 있었다 하더라도 현대사 부분은 전체 역사에서 극히 일부분이라 분량도 적은 편이었고 또 아직 정치 권력이 살아있다는 이유로 중요하게 다뤄지지도 않았다.

최근 국정 역사 교과서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다. 교육에 대해서만큼은 정치권이 개입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지만 바람은 그저 바람일뿐인 것 같다. 국정 교과서 문제가 이슈가 되다보니 '부림 사건'처럼 분명 내가 모르는 또다른 사건들이 있을 것 같아 현대사 관련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작년에 사두고 읽지 못했던 유시민 전 장관의 책 '나의 한국현대사'를 꺼내들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그 짧은 기간 동안 이렇게도 많은 사건들이 있었다는 것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굵직한 사건들을 제외하더라도 반민특위, 2.28학생의거, 광주대단지사건, 6.3사태, 인민혁명당 사건, 동백림 사건, 통일혁명당 사건, 재일교포 유학생간첩단 사건, 서울대생 내란예비음모사건, 고려대 침투 간첩단 사건, 검은 10월단 사건, 전남대 함성지 사건, 남산 부활절연합예배 사건, 유럽 거점 대규모 간첩단 사건, 제2차 인민혁명당 사건, 민청학련 사건, 크리스챤아카데미 사건, 남민전 사건, 부마민주항쟁, 사북사태,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건대사태 등 사건 이름만 나열하기에도 숨이 벅차다. 정부 수립 이후 노태우 정부까지 넓은 의미에서 민주화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사건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 <한국민주운동사>가 본문만 합쳐서 2300여쪽이나 된다고 하니 당시가 평온한 시절이 아니었음은 분명한듯 하다.

지면상의 이유로 상세한 설명없이 넘어간 사건들을 인터넷에서 하나 하나 검색해보며 이 책을 읽었다. '내가 참 모르는 것이 많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건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닐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국민들과 학자들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려고 하고 있다. 게다가 현대사는 축소한다고 하면서 또 국방부가 역사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다는 둥 대표집필진만 공개하겠다는 둥 국민들이 합리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행동들을 계속해서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한국민주운동사 -- 필자 주)을 읽다보면 마치 같은 사건들이 무한 반복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것은 민주화운동이 수십 년 동안 같은 '패턴'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이 패턴을 최대한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은 '알고리즘'이 된다.

집권세력 또는 정부가 독재, 인권탄압, 부정부패를 저지른다. 야당과 재야인사들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한다. 여기서 재야인사란 정치인이 아닌 지식인, 종교인, 문화인 등 영향력 있는 시민사회 리더를 가리킨다. 대중이 크게 호응하지 않으면 집권세력은 신경 쓰지 않고 같은 행태를 반복한다. 그러면 야당과 재야의 투쟁대열에 청년학생들이 가세한다. 교내에서 규탄선언문을 발표하고 항의집회를 하다가 거리시위를 벌인다. 시민들이 여기에 합세하지 않으면 정부는 적당히 진상을 은폐하고 몇몇 책임자를 처벌하는 시늉을 한다. 주동자를 구속하고 경찰을 동원해 시위를 진압한다. 그렇게 해서 투쟁이 끝나고 나면 집권세력은 또다시 독재와 부정부패를 저지른다. 같은 패턴의 투쟁이 또 벌어진다. 이것이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호응을 불러일으킬 조짐이 보이면 공안당국이 나선다. 소요사태의 배후에 불순세력과 북한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간첩단 사건, 용공이적단체나 반국가단체 조직사건을 발표한다. 비판적인 언론보도를 통제하고 친정부 언론을 동원해 엄청난 국가적 위기가 온 것처럼 시민들을 세뇌한다. 웬만하면 이런 정도로 상황이 끝난다. 그래도 끝나지 않으면 최루탄과 몽둥이로 무장한 경찰력을 투입해 시위자를 마구잡이로 연행하고 구속한다. 지치고 겁이 난 시민들은 분노를 삭이며 일상으로 돌아간다. 집권세력은 다시 독재와 부정부패를 저지른다. (...)

- 유시민, <나의 한국현대사>

이 책을 읽으며 정말 인상깊었던 부분이었다. 2015년 대한민국의 모습과 무엇이 다른가. 이쯤 되니 역사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은 몰랐던 한국 현대사의 수많은 사건들을 통해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행복에 대해 조금은 더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뼈아픈 과거가 반복되는 일이 없도록 행동하고 실천해야겠다고도 생각했다.

유사 이래, 어쩌면 신석기 시대 말기 이후 세계는 상, 중, 하 세 계급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다시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으며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이름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태도와 상대적 인구수가 시대에 따라 변화를 겪어 왔다. 그러나 사회의 기본 구조는 절대 바뀌지 않았다. 엄청난 격변과 겉보기에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똑같은 양식이 추구되어 왔다. 이것은 마치 팽이가 이리 맞고 저리 맞아도 항상 균형을 유지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들 세 집단의 목표는 결코 화해할 수 없다. 상층 계급의 목표는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중간 계급의 목표는 상충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하층 계급의 목표는, 그들에게 목표가 있다면 -- 일상적인 단조로운 일에 너무 시달려 일상적 삶 이외의 진지한 것을 거의 의식할 수 없는 것이 하층 계급의 지속적인 특징이기 때문에 -- 그것은 모든 차별을 폐지하고 인간이 동등해지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적.외형적으로는 똑같은 투쟁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 조지 오웰, <1984> 중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보면 위와 같은 구절이 나온다. '누가 되든 똑같아. 다 거기서 거기야.'하는 말은 크게 틀리지 않은 말일 수도 있다. 자신들의 권력과 자리를 지키기 위한 상층과 상층으로 올라가기 위한 중간 계층간의 다툼. 보수와 진보라는 이름으로 권력 다툼을 하고 있는 우리 나라의 정치판과도 무관하지 않은듯 하다.

누가 권력을 잡든 일반 국민들의 삶이 크게 나아지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심지어 조선시대의 태평성대라고 불려지는 세종이나 성종 시절에도 백성들의 삶은 고달팠으니 말이다. 그래서 정치에 대해 회의와 혐오를 느끼고 무관심해질 수도 있다. 나도 한 때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럴 때일수록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 끝으로 내가 왜 그렇게 확신하게 되었는지를 잘 나타내어 주는 글귀를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친다.

민주주의는 최선의 인물이 권력을 장악해 최대의 선을 실현하도록 하는 제도가 아니다. 최악의 인물이 권력을 잡아도 악을 마음껏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제도다.

- 유시민, <나의 한국현대사>